신발도 없이 맨발로 인도의 길을 걸었어요. 여름의 불볕더위에요. 신발을 안 신으면 땅바닥이 뜨거워서 발이 화상을 입고 또 발에 물집이 생기죠… 많은 이들이 그랬죠! 가봐서 내가 알아요. 한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불하신 곳인 부다가야를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와! 난 너무 어리석었죠. 4월이었거든요. 인도인들조차도 4월의 더위는 못 견뎌요. 난 서양 국가에서 막 온 데다, 작고 약해서 병에 걸리고 말았죠. 오, 나는… 내가 어떻게 걸었는지 알아요? 거북이주민이 걷는 걸 본 적 있나요? 아니면 달팽이주민이요. 보여줄게요. 그것보다 더 느렸어요. 축 처진 채로 걸었죠. 왜냐고요? 왠지 모르게 발이 너무도 무거웠고 몸이 너무 뻣뻣해서 마음대로 되지 않았거든요. 마치 늙은 소주민이 수레를 끄는 것 같았죠. 그땐 정말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았어요. 난 소주민이나 수레가 된 기분이었죠. 수레를 끄는 소주민이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죠.
그런 경험이 있나요? 때로 우리가 아플 때나 바람이 강하게 불 때 걸을 수가 없잖아요. 바로 그런 식이었죠.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여름에는 아주 덥거든요. 그 수행자는 그처럼 여름에 신발도 신지 않고 걸었어요. 그리고 비 오는 날엔 흠뻑 젖었죠. 찬 바람이 불어도 여전히 그곳에 앉아 있었어요. 망토처럼 걸치는 가사와 승복이 한 벌 있었죠. 춥든 덥든 똑같이 입었어요. 결국 그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물론이죠. 여러 날, 여러 해 동안 그렇게 지냈어요. 그 후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도 좋아요. 그는 그걸 일기장에 썼죠. 거기에 내 의견을 달지는 않겠어요. 그냥 그의 이야기를 해주는 거예요. 내 나름의 분명한 견해는 있어요.
내가 고행을 하기 위해 산에 간다고 생각지 마세요. 그건 아니에요. 그래서 형제가 가끔 산에 올라오면 내가 평범하게 사는 걸 보는 거죠. 때로 내가 식사할 때 그들이 오면 난 그들과 얘기를 나눴죠. 어떨 땐 그들이 마실 무알코올 와인도 만들었어요. (비건 무알코올 와인이요) 진짜 와인이 아니라 비건 무알코올 와인이죠! 일종의 주스예요. 여러 향신료가 섞인 주스요. 아주아주 향기로워요. 여러분에게 만들어주진 못 해요. 수천 명이 마실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작은 잔에 따라 조금 마시는 거니까요. 허나 레시피는 알려주지 않을 거예요. 한 번 마시면 중독돼서 수행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전해줄 수 없어요. 너무 위험하죠. 난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지만 여러분은 멈추지 못해요. 여러분은 평범한 음료에도 중독되는데 이렇게 좋은 건 말할 것도 없죠. 가끔 난 명상 후에 피곤하면 산책이나 수영을 하러 가요. 물에 뛰어들죠… 강물에 뛰어드는 건가요, 빠지는 건가요? 사람들에게 화가 나면 매일 강에 뛰어들었어요. 뛰어드는 건가요, 빠지는 건가요? (뛰어드는 겁니다) 강에 뛰어든 다음 강가로 나와서 그들에게 줄 음식을 요리했어요.
형제가 날 보고 웃으며 『헤헤, 스승님, 뭘 하시든 남들과 늘 다르시네요』 했죠. 내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하길, 남들은 안거에 들 때 먼저 진지한 서원을 한다고 했죠. 그들이 안거에서 나올 때면 사람들이 와서 그들을 경배하며 환영해 주고요. 또 밖에서는 누군가가 호법을 서고, 안에서는 누군가가 보호자 역할을 한다고 했죠. 많은 것들이 있어요. 그들은 눈을 뜨지 않고 종일 명상만 하죠. 『스승님의 안거는 왜 다른가요?』 알겠지만, 그의 말은 내가 진지하지 않단 뜻이었어요. 나는 『세상 사람들한테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난 이미 안거에 든 것』이라고 했죠. 『미친 사람들한테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내겐 안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그렇죠? (맞습니다) 늘 많은 이들을 맞이해야 하고 수많은 편지에 답하고 항상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에게 평화롭고 조용한 곳에서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것이고, 그 자체로 충분한 안거이죠. 우리가 어떤 안거를 바랄 수 있겠어요? 허나 난 안거에 매우 진지한 수행자라고 그에게 말했죠. 네, 끊임없이 도에 몰입하고 있죠. 항상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니에요. (네) 오, 너무 덥네요. 동의하나요? (네)
형제가 그렇게 말해서 나도 생각해 봤어요. 나도 그 책을 읽었어요. 그렇게 진지한 수행자를 보니 부끄럽더군요. 나도 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죠. 차이가 없었어요. 누워 있든 서 있든 앉아 있든 똑같았어요. 눈을 감든 뜨든 똑같았죠. 과연 신이 아닌 게 있나요? 신은 늘 여기에 계세요.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말하길, 오늘은 하늘이 흐리다, 하늘이 구름이 꼈다, 하늘이 맑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그리고… (하늘이 맑습니다) 하늘이 어떻다고 하죠. (하늘이 맑고 화창합니다) 네, 날씨가 나쁘거나 좋거나, 좋은 날씨이거나 나쁜 날씨라고 하죠. 다 『하늘』 (천국)이죠! (네) 그렇다면 우리의 운명도 하늘이 정하지 않겠어요? 역시 하늘에서 정해진 거죠. 단지 우리가 망각한 거예요.
그래요. 하지만 우리가 어느 단계까지 수행하면 결코 망각하지 않는 우리의 참자아가 깨어날 겁니다. 마음이 잊어버리는 것은 상관없어요! 애초에 이런 마음 자체가 없는데, 얘기할 게 뭐가 있겠어요? 우린 마음이 아니에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단지 수많은 습관들, 선입견들의 집합체이죠. 외부 세계에서 모아온 많은 것들이고, 이른바 물질적인 것들뿐이죠. 우린 이 마음이 아니에요! 우린 이 사람이 아니죠! 무슨 말인지 이해해요? (이해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가 잠들면 아무것도 없고 세상도 존재하지 않게 되죠. 그런데도 우린 존재해요. 그럼 누가 자는 건가요? 그러므로 잠자는 자는 이미 깨달은 자예요. 그는 자는 동안에도 깨달은 상태이고, 죽은 후에도 존재해요. 아니면 『떠난다』고 말하는 이가 누구인가요? 죽어가는 사람은 『안녕』이라고 작별 인사를 하지 않나요? 『난 떠날 것이다』 혹은 『곧 떠날 것이다』라고 하죠. 그래서 모두가 그의 마지막 말 몇 구절이라도 들으려고 달려오죠. 누가 떠나는 건가요? 그건 그가 존재하고 있고 지금은 여기 있지만, 다른 곳으로 갈 것임을 의미하죠.
그 『사람』은 출가할 필요도 없고, 명상할 필요도 없고, 계율을 지킬 필요도 없죠. 그는 영원히 존재해요. 우리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마음, 소위 습관과 선입견만 알기 때문이죠. 우리는 늘 마음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싶어 해요. 한 예로, 방금 말했던 그 방송국 광고를 자주 본다고 해봐요. 그 광고를 계속 본 뒤엔 결국 초콜릿을 사러 나가게 되고 『우적우적』 냠냠냠, 먹게 되잖아요. 그렇죠? 이처럼 세세생생 우리는 남들이 하는 것을 봐왔고 우리도 해보길 원했어요. 해보고 『음, 괜찮네』하고 생각되면 다시 해보고요. 그러는 동안 다른 것들을 접하게 되고 『음, 이것도 나쁘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면 또 시도하고 싶어 하죠. 하루 종일 새로운 것들과 새로운 경험들을 쌓으면서 자신의 진아를 잊는 거예요. 그런 거예요. 만일 우리가 죽을 때 호기심을 가졌던 것과 경험하고 싶었던 것을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면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이것을 윤회라고 하는 거죠.
식사나 수면 같은 사소한 것들은 무난하게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윤회에 영향을 주지 않아요. 하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아주 심각한 습관들은 다시 태어나게 만들죠. 도박이나 흡연, 흡입 (마약이요) 모르핀 같은 거요. 혹은 매우 심한 정욕이요. 그럼 만족을 얻기 위해 다시 태어나야만 하죠. 이런 것들은 좀 더 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중독자나 심각한 도박 중독자는 다시 태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어요. 그걸 아나요? 그들은 자신이 나쁘다는 걸 알아요. 그들은 아내와 자식까지도 기꺼이 팔아넘기죠. 그래요, 안 그래요? (맞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아수라의 등급에 있기에 보리의 단계, 제2세계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매우 깊죠. 매우 깊어요. 먹고 자는 것은 영향이 그리 오래가지 않아요. 물질적인 것을 먹는 것은, 먹으면 몸이 소화하고 배설하니까요. 누구나 먹을 것을 찾는 방법을 알고 있고 언제든 충족시킬 수 있죠. 배를 만족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허나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성욕을 충족시키고 조화로운 결혼 생활을 하는 건 쉽지 않죠. 혹은 도박도요, 돈을 잃지 않고 매일 도박을 하는 것도 쉽지 않죠. 혹은 파산하지 않고요. 몸을 망치거나 중독되지 않고 매일 마약을 하는 것도 쉽지 않죠. 이 모든 것은 매우 어렵죠. 이런 것들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따라서 결코 만족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윤회해야만 하는 거죠. (그렇군요) 그래서 우린 그런 것들을 최대한 피해야 해요. 아니면, 절대 스스로 만족할 수 없어요.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아주 쉽죠.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안 써요. 사람들이 죽어갈 때쯤 되면 더는 음식을 갈망하지 않죠. 매일 먹어서 만족했으니까요. 우린 배고플 때마다 먹죠. 문제없어요. 온갖 것들을 먹으면서 몸을 만족시킬 수 있죠. 하지만 성욕에 관해서라면 매번 적절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죠. 말했듯이 도박도 그렇죠. 매일 도박을 하면서 돈을 잃지 않기란 매우 어렵죠. 그래서 그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어요. 만족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건 고통스러워요. 만족하지 못할수록 만족시킬 기회를 더 찾게 되죠. 그리고 만족시킬 기회를 찾으려고 할수록 더 초조해지고 불안해지며 외부에서 만족을 구할수록 내면의 진정한 자아를 더욱더 잊게 돼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우리가 본래의 자아를 찾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거죠. 그게 다예요. 그러니 피하는 게 상책이죠. (네)
우리가 늘 저급한 것들만 배운다면, 높은 수준의 것들을 배울 시간이 언제 나겠어요? 우린 생을 거듭하며 그 모든 저급한 것들을 배워왔어요. 늘 그런 것들을 배우고, 봐왔죠. 지금 우리는 위로 올라갈 기회를 찾고 있어요. 그러니 더 높이 올라갈수록 더 좋아요. 고귀한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할수록 더 좋죠. 그것은 얻기 매우 어려운 것이니까요. 우리는 매일 모두가 아는 이런 저급한 것들을 봐요. 모든 이가 그것들을 볼 수 있고 언제든 찾을 수 있죠. 근데 뭐가 그리 귀해서 거기에 빠져들어야 하죠? 그런 의미예요.
누가 좋은지 나쁜지, 무엇이 순수하고 무엇이 추한지를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난 세상을 다르게 보니까요. 그래도 난 여러분에게 그런 것들을 가지고 놀지 말라고 조언해야만 해요. 이를테면, 의사는 『모르핀은 좋지 않다』고 말하죠. 또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살 수 없는 약들이 있어요. 그런 약을 아무에게나 팔면 안 되죠. 하지만 의사는 언제든 누구의 승인도 없이 그런 걸 사용할 수 있어요. 상황에 따라 남이나 본인이 사용하게 할 수 있죠. 의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독성 있는 물질도 쓸 수 있어요. (이해합니다) 우리는 아직 의사가 아니니 그런 것들을 사용할 수 없죠. 사용하지도 않고요. (네)
마찬가지로, 만일 누가 내게 『모두가 부처이니 계율을 지킬 필요 없다』라고 한다면 난 그래도 계율을 지키라고 권할 겁니다. 간단한 이치예요. 예로 우리 어른들도 가끔 약을 복용하거나 뭔가를 먹는데 포장지에 보면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세요』라고 쓰여 있죠.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세요』 네, 그래요. 우리만 먹고 아이들이 못 먹게 하는 건 이기심 때문이 아니죠. 아이는 이러겠죠. 『엄마, 아빠는 왜 매일 이걸 먹으면서 난 못 먹게 해요?』 아이가 왜 먹어야 하죠? 아이들은 비건 밀크를 마시고 너무 맵거나 짜거나 달지 않은, 영양가 있고 단순한 비건 음식을 먹어야 해요. 아직 어리니까요. 어른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러므로, 때로 이렇게 말해선 안 돼요. 『이건 왜 이렇지? 저건 왜 저렇지?』 혹은 『왜 스승님은 이렇지? 왜 스승님은 저렇지? 왜 나는 이렇지?』 나는 나이고, 스승은 스승이죠. 예를 들어, 내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해봐요. 그건 내 일이에요. 난 업장을 쌓을 거예요. 반면에 여러분은 청정하게 살면서 축복을 받는다면 그걸로 충분하죠. 나중에 여러분이 날 구하러 돌아와요. 그럼 좋지 않나요? 많은 사람이 한 명을 구하는 건 쉽죠. 허나 나 혼자만 선하고 여러분 모두가 나쁘다면 매우 어렵겠죠. 무슨 말인지 이해해요?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우린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남을 바라보지 말아야 해요. 날 보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그저 내 눈만 보면 돼요. 다른 것은 보지 마세요. 자신을 보세요. 얼마나 진보했는지 점검하세요. 얼마나 오래, 얼마나 이 도를 따를 수 있는지 점검하세요. 그게 좋은 것이고, 더 나아요. 이렇게 하면 내게 골칫거리를 안겨주거나 다른 이들에게 문제 일으키지 않을 거예요. 매일 자신을 점검해야 해요.
허나 신실한 마음이 어떤 고행이나 예절, 공양보다 더 중요해요. 신실한 마음이면 충분하죠. 간혹 실수를 한다 해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신실한 마음이 가장 중요해요.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이러진 마세요… 여러분 모두 핑곗거리를 잘 찾는다는 걸 알기에 바로잡아야겠어요. 집에서 동물주민 고기를 먹을 구실을 만들지 마세요. 『스승님이 마음만 신실하면 된다고 하셨으니 괜찮아』 여러분 마음이 신실한지 아닌지 누가 알겠어요? 여러분의 신실한 마음은 얼마나 큰가요? 꺼내서 보여줄 수 있나요? 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나쁜 일을 하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이해합니다) 그런 거예요. 왜 고행은 별로 효과가 없을까요? 그리고 계율을 지키는 것도 왜 별로 효과가 없을까요? 이것들은 필수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죠. 왜냐면 내가 방금 말했듯이… 아, 집에 가야 하나요? (스승님을 뵙고 싶습니다) 차가 기다리고 있나요? (아니요) (급하지 않습니다) 차가 기다린다면 조용히 가도 돼요.
이런 거죠. 왜냐면 방금 전에… 그 형제가 내 방식이 남들과는 다르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러니… 또 뭐가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죠. 난 고행을 하는 영적 수행자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그는 비, 더위, 모든 것을 무시했어요. 그는 아주 태평하게 진정으로 고행을 했어요. 난 그렇게 열심히 수행해 본 적 없어요. 어쩌겠어요? 난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아! 그러다가 깨달았죠. 그건 아무것도 아녜요. 진실로, 깨달을 땐 저절로 깨닫게 돼요. 그 사람처럼 고행을 하지 않았어도 그보다 더 높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을 나는 많이 봤어요. 누군지는 말하지 않겠어요. 그냥 내가 아는 걸 비교하는 거예요. 우리 동료 수행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아내나 남편이 있고, 세속의 즐거움을 편하게 누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어요. 허나 그들은 자신만의 내면 천국의 빛이 있어요. 나만 빛이 있다고 여기지 마세요. 재가자이든 출가자이든 우리 동료 수행자들 대다수는 내면 천국의 빛이 있어요. 알고 있나요? (네) 네. 특히 7일 선행사 동안 그걸 볼 수 있어요. 보통은 그렇게 많지 않죠. 허나 내가 파견한 사람들, 나에 관해서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약간 빛나는 이들이 있죠. 많든 적든 말이에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린 측정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정확하게 재진 않죠. 얼마나 빛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빛난다면 그걸로 충분하죠. 없는 것보단 나아요. 반딧불이도 빛을 내잖아요. 그리고 아주 행복해하죠.
사진: 신의 사랑은 모든 피조물을 포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