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장 강력하신 칭하이 무상사님은 당시 난민이었던 제자들을 영적으로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보트 피플』 사태가 시작된 이래로 그들을 돕기 위해 직접 일하셨습니다.
지난주엔 난민으로 바다에서 힘들게 표류하던 응우옌 씨를 성스러운 존재가 안전하게 인도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미국에서 자유와 새 보금자리를 찾았습니다. 몇 년 후, 그녀는 이 거룩한 존재가 가장 사랑하는 칭하이 무상사님(비건)인 사실을 알았습니다.
스승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응우옌 씨만이 아니었죠. 또 다른 어울락(베트남) 난민 샌드라는 임신한 채 며칠 동안 음식과 물도 없이 표류하던 중 그녀 기도가 응답받았죠.
『[…] 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관세음보살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그런데 배가 갑자기 흔들리며 기적적으로 홍해처럼 인파가 갈라지면서 배 앞쪽에서 제가 앉아 있는 곳까지 이어지는 통로가 나타났습니다. […]
금속 물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배 앞쪽에서 바로 제 무릎으로 굴러왔습니다. 본능적으로 금속 물체를 집어서 확인해 보니 보온병이었습니다! 보온병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인삼차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목이 말라 그 차를 한 번에 다 마셔버렸고 곧바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4일 후, 인도네시아의 외딴섬에 있는 난민 캠프에 도착했고, 저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 모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죠 […]』
우리의 가장 강력하신 칭하이 무상사님은 당시 난민이었던 제자들을 영적으로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보트 피플』 사태가 시작된 이래로 그들을 돕기 위해 직접 일하셨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재정, 에너지, 개인의 행복까지 희생하며 그렇게 하셨죠.
40년이 지난 최근에야 스승님은 그 목적을 위해 치르셨던 엄청난 개인적 희생의 일부를 밝히셨습니다.
스승님: 『남편을 만나기 전에 약혼자가 있었는데 그도 의사였어요. 그는 식당에서 날 만났죠. 몇 번 만난 뒤에 날 자기 집과 병원으로 초대했어요. 나와 결혼하길 원했어요. […]
우린 행복했어요. 어울락(베트남) 난민 문제가 내 인생에 닥치기 전까진요. 난 그들을 내버려둘 수 없었죠. 밤엔 아무도 없었어요. 밤에 여러 사건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아픈데 통역사가 없거나 남편과 친척도 없이 혼자인 만삭의 임산부가 출산하는 등 그런 일이요. 그녀가 출산한 날 밤은 제 마음이 기쁨으로 벅찼죠. 힘든 진통 끝에 출산한 그녀를 나는 꼭 안아주며 그녀의 이마에 여러 번 입 맞추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쩌다 한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오긴 했지만 몇 시간만 있다가 가거나 하루 정도만 있었어요. 다들 자기 일이 있었고 가족도 먼 곳에 있었죠. 그래서 나만 밤낮으로 거기 있었어요. 다른 직원이 아무도 없었을 때도요. 물론 남자는 남자였어요. 한 간호사가 그를 알면서… […] 난 물론 마음이 아팠지만 그땐 바빴어요. 그는 자기 갈 길을 갔고 나는 내 길을 갔어요』
몇 년 후, 칭하이 무상사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관음 법문 명상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신 후에도 도움이 필요한 자국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유엔의 1989년 포괄적 행동 계획은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의 『보트 피플』을 대상으로 『자격 심사』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은 난민 지위를 잃고 본국으로 송환되어 상상할 수 없는 결과에 직면할 상황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취약한 사람들 사이에서 위기의 연장을 촉발했죠. 필리핀 난민촌의 일부 난민은 극단적인 자살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칭하이 무상사님은 순회강연 중이었음에도 즉시 일정을 변경하여 절망에 빠진 난민들을 방문하시고 위로와 격려를 전하셨습니다.
스승님: 『나는 정말 불안했습니다. 여기 온 것은 여러분이 나의 동포이기 때문입니다. […]』
스승님은 어울락(베트남) 난민의 고통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라디오와 TV에 출연했죠.
스승님: 『나는 대통령님, 정부, 그리고 필리핀의 선량한 국민 여러분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이 불쌍한 사람들을 이토록 자비롭고 다정하게 두 팔 벌려 맞아 주셨듯이 부디 앞으로도 더 오랫동안 이들을 두 팔 벌려 도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스승님은 필리핀 정부 관료를 만나 실질적인 해결책을 논의하셨습니다. 그 해결책은 스승님의 재정 지원과 실행 가능한 제안으로 뒷받침되었죠.
1990년대 초 많은 정부 관리와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마르코스 여사와 각종 매체는 이 인도적인 대의를 돕기 위해 칭하이 무상사의 편에 섰습니다.
알바레즈 상원의원: 『그리고 칭하이 스승님이 오셨고 도착하자마자 소개받았는데 아주 효율적인 분이었죠. 저는 라모스 대통령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대통령께 스승님의 업적과 그녀가 난민들을 위해 어떻게 일했는지 알리면서 대통령께서도 뭔가를 하셔야 한다고 말했죠.
필리핀은 어울락(베트남) 난민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피난처로 보였지요. 외국에서 새 거주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필리핀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시행한 가장 보람된 정책 중 하나입니다』
알바레즈 상원의원: 『칭하이 무상사께서 마누엘 모라토 씨와 마닐라 사회 곳곳을 누비셨을 때 다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자비로운 사람들은 베트남(어울락) 형제에게 정치적인 피난처를 제공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 법안은 통과되었고 라모스 대통령은 줄곧 도움을 주었어요. 덕분에 우리는 마닐라에 머물기를 원하는 많은 형제에게 자유의 안식처를 제공할 수 있었어요』
스승님: 『이 신사분들께 감사합니다. 어려울 때 동료 인류를 도와준 조건 없는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1994년, 홍콩에서 강제 추방당할 처지에 처한 난민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들으신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화이트헤드 난민센터를 다시 방문하여 전 세계에서 모인 5천 명의 협회원과 함께 국제 모임을 열어 난민들을 위해 평화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스승님: 『수행하는 우리는 당연히 평화를 선호하고 지혜를 계발하며 타인을 돕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문제 또한 영적 수행의 범위에 속합니다. 오늘 우리는 전 세계에서 이곳에 모였습니다. 난민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지원도, 정치적 지위도 원치 않고 오직 자유만을 원하며, 우리와 같은 존엄성을 원할 뿐입니다』
스승님의 노력으로 5천 명 이상 난민이 필리핀 정부로부터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만 해도 칭하이 무상사님은 필리핀, 대만(포모사), 홍콩, 태국, 일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프랑스, 캐나다, 미국을 포함하여 어울락(베트남) 난민촌에 총 68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셨습니다.
1990~1997년, 어울락(베트남)난민을 위해 칭하이 무상사(비건)께서 기부하신 추정 금액: 미화 682,909달러. 스승님은 또한 알려지지 않거나 공식 목록에 없는 다른 관련 비용도 지출하심. 등등...
칭하이 무상사님의 인도적 노력은 국제 사회에 난민 위기에 대한 크나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이 다르게 행동하도록 고무했습니다. 1994년 5월 25일, 국제 인권 회의가 타이베이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되었습니다. 20여 개국에서 온 5천 명이 넘는 고위 인사, 언론 관계자, 인권 운동가들이 그녀의 대의를 지지하고 노력을 기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슈나이더 박사: 『신은 자비와 연민으로 때때로 자비를 보여주려고 지구에 깨달은 사람을 보내셨고 오늘 밤 우리는 그런 한 분께 영예를 드립니다. 국제 평화 라디오의 2백만 청취자들과 국제 교육대학은 전 세계에서 스승님의 사상과 감정 정신을 구현하며 이타적으로 실천하는 엄청난 규모의 인도적 노력에 대해 자랑스럽고 기쁘며 영광스럽습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노력과 모든 인류의 지위와 여건에 상관없이 크나큰 자비와 보살핌을 보여주신 데 대해 우리의 가장 높은 상인 세계 인도주의 시민상을 칭하이 무상사께 수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MC: 『필리핀에 있는 아시아태평양 청소년 자유연맹 의장이신 르네 산토스 박사와 부인 에미미 산토스 여사께서 칭하이 무상사께 인도주의 모범 메달을 수여하시겠습니다』
그 행사에서 스승님은 인류에 대한 진정한 희망을 표현하셨습니다.
스승님: 『아직도 이렇게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포모사(대만)에 있고 아직 이 세상에 자비로운 사람이 많이 있는 걸 보고 오늘 다소 위안이 됩니다. 난 정말 암울했어요. 하지만 포모사(대만)에서 오늘 오신 고위 인사를 포함하여 이렇게 많은 분과 힘없고 집 없는 난민들을 지원하려고 세계 곳곳에서 오신 여러분을 보니 다시 희망을 찾았네요. 나는….
우리 세상이 다가오는 21세기엔 더 좋아지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길 바랍니다. 아무리 많은 난민이 있다 해도 모든 가정이 한 명의 난민에게라도 문을 연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난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자립할 수 있고 생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평생 짐이 되진 않겠죠.
또한 신은 때로 우리가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지, 진정으로 남을 사랑하는지를 보려고 고통받는 이들을 우리 면전에 보내서 시험합니다』
어울락(베트남) 난민들을 위한 칭하이 무상사님의 활동은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 왕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에스더 왕비는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사형 선고에서 구했습니다. 에스더처럼 그녀 역시 어울락(베트남) 난민을 돕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고 수천 명이 새로운 사랑의 나라에서 자유와 새로운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킴 클레멘트: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들어라. 부흥이 시작하면서 그것이 시작될 때, 일어설 한 여인이 있으리라. 믿음이 강하고 덕이 있는 여인, 눈이 아름다운 여인, 그 눈은 정말 아름답고 둥글고 클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에스더에게 왕관을 씌웠듯 내가 그녀에게 왕관을 씌웠고 백성들이 그녀를 영접할 것이다. 그녀는 고통과 애도에 대한 기쁨의 기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유형무형의 업적은 칭하이 무상사께서 수년간 행하신 사명 중에서 우리 협회 회원들이 목격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처럼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 일들을 이루셨는지 우리는 헤아릴 수 없지만, 모든 중생을 향한 스승님의 큰 자비와 길 잃은 영혼을 구하려는 변함없는 의지, 전능하신 신께서 맡기신 신성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